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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인가, 관계인가

작성자 사진: 정환 조
정환 조
3일 전
7분 분량

사사기 13:1-14

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 2 그 때에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가운데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 3 주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4 그러므로 이제부터 조심하여,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아라.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 5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6 여인은 곧바로 남편에게 가서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 나에게 오셨는데, 그분의 모습이 하나님의 천사의 모습과 같아서,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감히 묻지도 못하였고, 또 그분도 나에게 자기 이름을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7 그런데 그분이 내게 말하기를, 내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제부터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8 이 말을 듣고 마노아가 주님께 기도드렸다. "주님, 우리에게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셔서, 태어날 아이에게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여 주십시오." 9 주님께서 마노아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주님의 천사가 다시 여인에게 왔다. 그 때에 그 여인은 밭에 앉아 있었는데, 남편 마노아는 아내와 함께 있지 않았다. 10 그래서 그 여인은 급히 달려가 남편에게 말하였다. "와 보세요. 저번에 나에게 오셨던 그분이 지금 나타나셨어요." 11 마노아는 일어나 곧 아내를 따라가서, 그 사람에게 이르렀다. 마노아가 그를 보고서, 저번에 자기의 처에게 말하던 그분이냐고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12 마노아는 그에게, 지난번에 한 그 말이 이루어질 때에 그 아이가 지켜야 할 규칙은 무엇이며, 또 그 아이가 할 일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13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에게 일러주었다.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일러준 모든 것을 그 아이가 지켜야 하고, 14 마노아의 아내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마노아의 아내가 지켜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규칙인가, 관계인가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손이 태어나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준비하셨고, 그를 통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삼손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면서, 이 부모의 믿음도 함께 살펴보게 됩니다.

이 장면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생각하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는 수태고지 장면과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 가지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삼손의 부모, 마노아와 그 아내는 계속해서 규칙을 질문합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기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규칙이 중요한가, 아니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한가. 이 두 가지를 구분해 보아야 합니다.

마리아를 보면, 천사가 나타났던 그 순간부터 이 일이 사실인가를 계속해서 깊이 숙고하고 살펴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태도는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앎이 더 중요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마노아와 그 아내가 이 놀라운 사건을 경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반응하려고 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규칙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율법과 규칙에 따라 우리의 삶과 신앙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정말 잘 이루어진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우리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13:1)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고, 주님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 하나를 꼽는다면,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입니다. 기준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과 사람의 기준. 어떤 기준에 따라 행동할 것인가가 중요했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보시는 그 눈,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어야 했음에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리 말씀드리면, 마노아가 가진 아주 긍정적인 면 중 하나는 하나님의 기준을 통하여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을 알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움직이려고 했던 부분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을 보면, 앞서 소사사 세 명이 등장하는데 이 소사사들도 결국에는 점점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힘을 차지한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점점 더 악을 행하고 긴 시간 동안 압제를 당하는 흐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명이 끊어진 자리 (13:2)

소라 땅 단 지파의 가족 가운데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어서 자식을 낳지 못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왜 자식을 낳을 수 없었는지 더 자세히 알 방법은 없지만, 어쨌든 생명에 대한 약속이 끊어져 있는, 저주받은 가족처럼 여겨지는 상태입니다.

임신하지 못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저주와 연관된 이미지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 가장 좋은 예 중 하나가 사라이고, 그다음이 한나이며, 아예 임신할 수 없는 여인이 임신하게 되는 마리아까지 이어집니다.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상태가 저주받은 상태인데, 그것이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와 굉장히 닮아 있다는 점도 지적해 볼 만합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이 지금 생명을 낳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라 자기 눈에 따라 행동했을 때, 생명이 끊어지는 저주의 상태에 놓이고 압제당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태가 변하고 있다 (13:3)

주님의 천사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 말합니다. "보아라, 네가 지금까지는 임신할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사사기를 살펴볼 때 가장 중요한 점 중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장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며 사사를 보내신다는 흐름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장면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마노아와 그 아내만 등장합니다.

그러면 이 두 인물의 특징을 하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아내는 아마도 생명을 낳을 수 없는 것 때문에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짖음은 이 시대적 환경과 연결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한나도 비슷한 이유로 기도했고, 한나의 기도 제목도 유사했습니다.

만약 이것이 옳다면, 이 장면이 다 말하고 있지 않은 마노아와 그 가족의 회개와 부르짖음, 울부짖음, 그리고 하나님의 전적인 응답이 굉장히 놀랍게 엮여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전체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개인 한 가정에서 드러나는 울부짖음조차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기억하고 계시고, 응답하신다는 이야기도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아이에게 주어진 규칙 (13:4-5)

천사는 마노아의 아내가 낳게 될 아이에게 주어질 규칙을 설명합니다.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지 말라고 합니다.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되는데, 그 아이는 모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삼손의 어머니조차도 마치 서원한 인물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규칙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도 이런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이 규칙이 결국 무엇인가 하면, 스스로 가지게 된 눈, 곧 하나님의 눈이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는 이스라엘의 방식을 떠나서 하나님의 규칙을 따라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훈련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예언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보고, 그러나 (13:6-7)

여인은 곧바로 남편에게 가서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왔는데 그 모습이 하나님의 천사의 모습과 같아 너무나 두려웠고, 어디서 오셨는지 감히 묻지 못했으며 그분도 이름을 일러주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들은 규칙을 그대로 전하면서, 그 아이가 모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인이 보고하는 내용을 보면 아주 정확하게 보고하고 있고, 핵심 지점인 "나실 사람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가 강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구별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 구별된 삶이라고 하는 것이 외형적인 규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말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는 것이 임신한 어머니가 지켜야 할 규칙이었습니다. 또 모태에서부터 나실 사람으로 태어날 이 아이가 지켜야 할 규칙들, 머리를 자르면 안 되고 독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규정들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구별된 삶에 대한 외형적인 규칙은 아주 잘 받아들인 것 같은데, 왜 하나님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시는가에 대한 답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인 규칙과 구별된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왜에서부터 출발하는 질문,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시는지에 대한 보고가 빠져 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원하려 하시는 그 목적과 이유가 빠져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약간 아쉬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노아의 기도 (13:8)

마노아가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 우리에게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셔서, 태어날 아이에게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에서도 규칙을 알려 달라고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의 오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르치셨고, 십계명과 십계명의 가장 큰 원칙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규칙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주신 규칙 외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야 하는 규칙을 다시금 알려 달라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온전한 규칙보다도 지금 나실인으로 살아야 하는, 구별된 삶으로 살아야 하는 이 특별한 규칙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기드온의 질문과 마노아의 질문 (13:9-12)

주님께서 마노아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주님의 천사가 다시 여인에게 왔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밭에 앉아 있었고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급히 달려가 남편에게 "와 보세요. 저번에 나에게 오셨던 그분이 지금 나타나셨어요" 하고 말합니다.

지금 마노아가 하려고 하는 이 과정, 곧 기도와 응답의 과정을 보면 기드온을 떠올리게 됩니다. 기드온이 의심을 가지고 질문할 때, 그 질문이 순종을 위한 질문이었다는 점에서 우리가 큰 긍정적인 점수를 주었던 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마노아가 계속해서 질문하려고 하는 과정이 믿지 않기 위한 의심이 아니라, "그 일이 정말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잘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는 질문으로 들립니다.

마노아는 아내를 따라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저번에 자기 아내에게 말하던 그분이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을 듣자 지난번에 한 그 말이 이루어질 때에 그 아이가 지켜야 할 규칙은 무엇이며 그 아이가 할 일은 무엇이냐고 질문합니다.

같은 말을 다시 (13:13-14)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에게 일러줍니다. 주님의 천사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일러준 그 모든 것을 아이가 지켜야 하고, 마노아의 아내는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되고, 포도주와 독한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며, 부정한 것은 어떤 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다시금 들려줍니다.

이렇게 마노아와 이 가족은 계속해서 순종하기 위한 규칙에 대해 끈질기게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고 있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이 규칙이 어떠한 배경 가운데에서 제공되고 있고, 결국에는 왜 이 규칙을 지켜야 하는가를 넘어서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어떻게 왜 하려고 하시는가,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이 질문이 너무 빈약하고 빈곤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너무나 거대하고 큰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분이 하셔야 될 일은 그분이 알아서 하시고 나는 그냥 지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 태도가 아주 좋은 순종의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성경이 이야기하는 것을 쭉 따라가다 보면, 결국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규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순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자체를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의 만남을 요구하시는 것이고,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삼손의 결말이 말해 주는 것

마노아와 그 아내가 지켜야 하는 규칙들은 물론 중요하고, 그것을 지킴으로 삼손이 태어나며, 그 순종의 결과로 삼손을 통해 일어나게 될 놀라운 사건들을 우리는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삼손이 진짜 참된 사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오염된 가나안적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국 마노아와 그 아내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가르치는 일에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의 묵상

이제 우리에게 돌아와 봅니다. 우리는 규칙을 지키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진짜 중요한 그리스도인입니까.

우리가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깊이 있다면, 우리가 지켜야 하는 규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규칙에 매이다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질 수 있고, "내가 규칙을 지켰다"는 것에 머물러 여전히 가나안적인, 여전히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유지한 채 하나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관심 자체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시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규칙을 지켜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님과의 그 관계, 사랑의 관계에 정말 집중하고 있는지 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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