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승리
사사기 8:1-21
1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장군께서는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실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들이 기드온에게 거세게 항의하니, 2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이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이 떨어진 포도를 주운 것이 아비에셀이 추수한 것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3 하나님이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기드온이 이 말을 하니, 그들의 노여움이 풀렸다. 4 기드온이 그가 거느리는 군사 삼백 명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 지친 몸이지만 계속 적들을 추격하였다. 5 기드온은 숙곳에 이르렀을 때에 그 곳 사람들에게 사정하였다. "나를 따르는 군인들이 지쳤으니, 그들에게 빵 덩어리를 좀 주십시오. 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6 이 말을 들은 숙곳의 지도자들은 "우리를 보고 당신의 군대에게 빵을 주라니, 세바와 살문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기라도 하였다는 말이오?" 하고 비아냥거렸다. 7 그러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좋소! 주님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신 뒤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을 찌르고야 말겠소." 8 거기에서 기드온이 브누엘로 올라가, 그 곳 사람들에게도 같은 사정을 해보았지만,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았다. 9 그래서 그는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내가 안전하게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 이 망대를 헐어 버리고 말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 때에 세바와 살문나는 겨우 만 오천 명의 군대를 데리고, 갈골에 진을 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사막 부족의 군대 가운데서 살아 남은 자들인데, 이미 칼 쓰는 군인 십이만 명이 전사하였다. 11 기드온은, 장막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노바와 욕브하까지 올라가서, 방심하고 있던 적군을 기습하였다. 12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또 도망치니, 기드온이 그들을 추격하여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온 군대를 전멸시켰다. 13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길에서 전쟁을 마치고 오다가, 14 숙곳 사람 젊은이 한 명을 포로로 잡아서 캐물으니, 그 젊은이가 일흔일곱 명이나 되는 숙곳의 지도자들과 장로들의 명단을 적어 주었다. 15 기드온은 숙곳에 이르러 그 곳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세바와 살문나가 있다. 너희는 나에게 '우리를 보고 당신의 지친 군대에게 빵을 주라니, 세바와 살문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기라도 하였다는 말이오?' 하면서 나를 조롱하였다." 16 기드온은 그 성읍의 장로들을 체포한 다음에, 들가시와 찔레를 가져다가, 숙곳 사람들을 응징하였다. 17 그리고 그는 브누엘의 망대도 헐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18 그런 다음에 그는 세바와 살문나에게 물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그들은 당신처럼 하나 하나가 왕자와 같았습니다." 19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다.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너희가 그들을 살려 주기만 하였더라도 내가 너희를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20 기드온은 맏아들 예델에게, 어서 그들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 어리고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하였다. 21 그러자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사내 대장부답게 네가 직접 우리를 쳐라."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쳐서 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떼어 가졌다.
승리 다음에 오는 이야기
어제 우리는 기드온이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는 장면을 읽었습니다.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미디안이 스스로 무너지고, 포도주 틀에서 부름받았던 사람이 포도주 틀에서 승리를 완성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승리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읽으면서 계속 석연치 않습니다.
기드온은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승리를 마치 자기 것으로 삼는 듯한 모습이 오늘 본문 전체에 흐릅니다. 우리가 성공과 하나님의 일하심을 뒤섞어 버리면, 내가 성공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하기가 쉽습니다. 오늘 기드온이 바로 그 잘못을 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일하시면 우리에게 성공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승리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심은 언제나 성공과 승리로만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가장 잘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외형적으로 볼 때,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에는 미련한 것이고 패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확실한 승리는 십자가 그 너머의 부활에서 경험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에서는 실패처럼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기드온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무조건 승리, 무조건 더 나은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착각한 것 같습니다.
에브라임의 적반하장
그때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거세게 항의합니다. "장군께서는 미디안과 싸우러 나가실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에게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적반하장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정말 그런 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기드온이 부르기 전에 미리 나가서 미디안과 싸워 이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아서 우리가 공적을 세우지 못하게 만들었느냐"고 항의하고 있습니다. 기드온으로서는 기가 차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드온은 이 반응에 대해 화를 내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좀 수그리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대목이 오늘 본문을 읽는 첫 번째 열쇠입니다.
떨어진 포도와 아비에셀의 추수
기드온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에 내가 한 일이 당신들이 한 일에 비교나 되겠습니까? 에브라임이 떨어진 포도를 주운 것이 아비에셀이 추수한 것 전부보다 낫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스엡을 당신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여기서 포도를 주운 것과 오렙과 스엡을 잡은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제 우리가 함께 읽은 대로,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었습니다. 바위와 포도주 틀에서 벌어진 그 장면을, 기드온은 지금 "떨어진 포도를 주웠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분명히 어떤 성과를 낸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성과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그 성과를 자기 것으로 삼는 것 자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한 것은 너무나도 작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겸손처럼 보이는 말
이 장면에서 "아, 기드온이 참 겸손하구나" 하고 읽는다면, 본문 전체가 흘러가는 이야기 자체를 놓치게 됩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기드온은 지금 이 장면 가운데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승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이 승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가 아니라 자신의 승리, 그리고 자신의 복수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본문 끝에서 읽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읽을 때, 왜 에브라임 지파에게 약간 숙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 주었는지가 설명됩니다. 기드온은 지금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은 상당히 힘 있는 지파입니다. 반면 조금 뒤에 나오는 숙곳은, 일흔일곱 명이나 되는 지도자와 장로가 있을 만한 성읍인데도 힘이 없으니 그냥 정복해 버립니다.
에브라임 지파에게는 함부로 하지 못하고, 숙곳에는 함부로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사기 시대의 힘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봅니다. 문제는 기드온이 지금 사사라는 것입니다. 사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일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의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타락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거느리는 군사 삼백 명
기드온이 그가 거느리는 군사 삼백 명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 지친 몸이지만 계속 적들을 추격합니다. 여기에 의미심장한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거느리는 군사"입니다.
이 삼백 명은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과하게 만드셔서 뽑으신 삼백 명입니다. 물을 핥아 먹는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지까지 하나님이 걸러 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가 거느리는 군사 삼백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승리, 하나님이 주신 군대로서의 역할이 아니라, 이제 자기 수하가 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정말 자기 수하로만 삼았다면 이 삼백 명이 따라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명분이 있었습니다. "적들을 끝까지 쫓아가자. 우리가 지친 몸이지만 계속 추격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 실제로 이 명분이 통했고,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 장면만 읽으면 기드온이 승리를 향한 열망이 가득하구나,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강렬한 원함이 있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읽어 갈수록 기드온의 선택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는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이 명분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반전이 등장합니다.
숙곳의 비아냥, 그리고 과도한 감정
기드온은 숙곳에 이르러 사정합니다. "나를 따르는 군인들이 지쳤으니, 그들에게 빵 덩어리를 좀 주십시오. 나는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명분이 아주 좋습니다. 미디안의 두 왕을 추격하고 있고, 이들을 심판함으로써 하나님의 승리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은 지속해야 될 싸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숙곳의 지도자들은 완전히 다르게 생각합니다. "우리를 보고 당신의 군대에게 빵을 주라니, 세바와 살문나가 당신의 손아귀에 들기라도 하였다는 말이오?" 하고 비아냥거립니다.
이 비아냥이 사실 그럴 수 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아직 미디안의 힘이나 군사력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러니 전쟁을 치르러 가는 삼백 명만을 보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숙곳 지도자들이 잘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싸우게 만드셨고, 삼백 명을 통하여 모래알보다도 많은 군사들을 물리치셨는데, 세바와 살문나를 치러 가는 이 길에서 그 정도의 도움도 주지 않는다면 할 말이 없기는 합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기드온의 과도한 감정이 삽입됩니다. "좋소! 주님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나의 손에 넘겨 주신 뒤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당신들의 살을 찌르고야 말겠소."
질문도 응답도 순종도 없다
하나님께서 이런 명령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는 어떤 기도도, 질문도, 응답도, 순종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기드온은 계속해서 질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같아 보여도 순종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었습니다. 항아리를 들고 나가라는 말에도 순종했고, 삼백 명만 데리고 가라는 말에도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어떤 질문도, 응답도, 순종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거대한 명분 하나만 있습니다. "미디안의 왕들을 쫓는다." 이 명분만 있습니다. 그러면 이 명분을 이루려고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하나님께 질문했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찌르다, 곧 타작하다
여기에서 "찌르다"라고 번역된 말은 "타작하다"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찔레로, 들가시로 타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기드온이 어디에서 부름받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는 포도주 틀에서 몰래 타작을 하다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큰 용사여"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두려워서 숨어 타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타작하겠다"라고 말합니다. 마치 자신의 옛 모습을 변형하여, 이제는 큰 용사로서 타작하겠다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숨어서 밀을 타작하던 사람이, 이제 사람의 살을 타작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큰 용사의 모습일까요.
기드온이 엄청난 힘과 능력으로, 삼백 명의 군대로 미디안을 물리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과 계획으로서 일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궁금증이 남습니다.
사사가 아니라 왕처럼
거기에서 기드온은 브누엘로 올라가 같은 사정을 해 보지만,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브누엘 사람들에게도 "내가 안전하게 성한 몸으로 돌아오는 날, 이 망대를 헐어 버리고 말겠소" 하고 말합니다.
기드온과 삼백 명의 용사가 얼마만큼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전투력과 용맹함, 그리고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가를 생각해 볼 때, 기드온은 지금 사사의 역할보다도 마치 왕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 당시 왕은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물자라든지 군사력, 양이나 소를 차출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기드온이 요구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차출에 반대할 때에는 마땅한 응보가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왕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지금 왕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뒤에 이스라엘이 기드온을 왕으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기가 왕이 안 되겠다고 말하고, 아들들도 왕이 안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자기가 이미 왕처럼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분은 하나님의 싸움, 하나님의 전쟁인데,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물을 보니 이미 왕처럼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명분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 성공 이런 것으로 포장해 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성공주의적인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겨우 만 오천 명
그때 세바와 살문나는 겨우 만 오천 명의 군대를 데리고 갈골에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막 부족의 군대 가운데서 살아남은 자들인데, 이미 칼 쓰는 군인 십이만 명이 전사했습니다.
"겨우"라고 되어 있지만, 만 오천 명도 굉장히 큰 군대입니다. 십이만 명이 전사하고 만 오천 명이 남았으니 십분의 일밖에 남지 않아서 "겨우"이지만, 싸움 자체로만 보면 삼백 명이 싸우러 가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큰 규모의 군대입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장막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을 따라 동쪽으로 노바와 욕브하까지 올라가서, 방심하고 있던 적군을 기습합니다. 그리고 이 기습 작전을 통해 분명한 승리를 얻습니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탁월한 전략가였습니다. 이 전략을 통해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탁월함과 명분을 더하여 성공을 누리게 되고, 이 성공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까지 합니다.
이것만 보면 "하나님의 사람은 이래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성공 우리도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이것이 어떻게 보면 함정처럼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볼에서 죽인 자들
조금만 더 읽어 보면 그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치니 기드온이 추격해서 사로잡고, 온 군대를 전멸시킵니다. 그리고 헤레스 비탈길에서 전쟁을 마치고 오다가 숙곳 사람 젊은이 한 명을 포로로 잡아서 캐묻습니다.
"포로로 잡았다"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사람을 설득해서 정보를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취조하고 신문해서 강압적인 무력을 사용해 캐물었다는 의미입니다. 힘을 쓴 것입니다. 그렇게 일흔일곱 명이나 되는 숙곳의 지도자들과 장로들의 명단을 얻습니다.
기드온은 숙곳에 이르러 "너희가 나를 조롱하였다"고 하는 과거 이야기를 다시 들춰냅니다. 그리고 성읍의 장로들을 체포한 다음에 들가시와 찔레를 가져다가 숙곳 사람들을 응징합니다. 브누엘의 망대도 헐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왜 기드온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요. 말한 그대로 행동하고, 보복하고, 헐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에 대한 과신일 뿐더러, 하나님께서 어떤 명령을 주시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이면에, 더 깊은 이면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드온이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더냐?" 그들이 대답합니다. "그들은 당신처럼 하나 하나가 왕자와 같았습니다." 기드온이 말합니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다."
한마디로, 세바와 살문나가 다볼에서 죽인 사람들은 기드온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됩니다. 이것은 그냥 전쟁이 아니라, 개인적 복수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에 대한 그 분노가 여기에 담겨 있었기 때문에, 삼백 명을 데리고 "세바와 살문나를 쫓아가자, 배고프지만 지치지만 힘들지만 가자, 하나님이 싸우신다"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면, 내면에는 가족에 대한 복수심이 극도로 차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의 손에 칼을
그러면 이제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명분이 있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개인적 복수심을 담는 것이 정당하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질문을 가져 보게 됩니다. 힘이 있을 때, 그 힘을 나를 위해서 사용해도 괜찮은 것인가.
그랬을 때 성경은 어떠한 답을 내려 주지 않습니다. 결과만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결과는 꽤나 성공적입니다. 기드온은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기도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도 하고, 꽤나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인간적인 모습으로는 성공입니다. 성공지향적인 삶을 해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과연 좋다고만 말할 수 있을까요. 영적인 상태가 지금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드온은 맏아들 예델에게 어서 그들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 어리고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합니다.
예델에게 세바와 살문나를 처리하라고 하는 것은, 이것조차도 가족에 대한 복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가족에 대한 복수이기 때문에, 가문 사람들에 대한 복수를 어린 자식에게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자식이 이 복수를 하게 되었을 때 생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력입니다. 적들 왕의 머리를 베었다면, 그로부터 권위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지금 그것을 맏아들 예델에게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두려워했던 기드온을 다시 생각나게 만듭니다. 포도주 틀에 숨어 있던 아버지의 두려움이, 칼을 뽑지 못하는 아들의 손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바와 살문나가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사내 대장부답게 네가 직접 우리를 쳐라."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쳐서 죽이고, 그들이 타던 낙타의 목에서 초승달 모양의 장식을 떼어 가집니다. 그렇게 기드온은 복수에 성공합니다.
적용 — 승리가 오염되는 순간
이것으로써 기드온의 복수와 승리, 또 전쟁에 대한 영웅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웅적 모습이 과연 이스라엘을 제대로 된 하나님 나라로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었는가를 질문하게 됩니다.
성공은 나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기도 합니다. 승리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획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에 자신의 승리, 자신의 감정, 자신의 복수를 담아내는 순간 승리가 오염됩니다. 성공이 오염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의 성공과 나의 승리와 교묘히 섞어서 실패하는 모습은 없지 않은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진짜 우리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면, 그것들을 내려놓고 진정한 십자가 승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생명, 그 부활로 말미암아 승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결국 십자가 지고 가는 삶, 그 끝에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드시는 그 놀라운 이야기를 우리의 삶 속에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공이 우리 안에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하필큐티 · 하루 필수 말씀 충전 | 조정환본문: 성경전서 새번역 (대한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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