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사랑의 관계
사사기 16:1-20
1 삼손이 가사에 가서, 창녀를 하나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2 삼손이 거기에 왔다는 말을 들은 가사 사람들은, 그 곳을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숨어 그를 기다렸다. 동이 틀 때를 기다렸다가 그를 죽이려고 생각한 그들은 밤새 가만히 있었다. 3 그러나 삼손은 밤늦도록 누워 있다가, 밤중에 일어나서 성 문짝을 양쪽 기둥과 빗장째 뽑았다. 그는 그것을 어깨에 메고 헤브론 맞은편 산꼭대기에 올라가, 거기에다 버렸다. 4 그 뒤에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들릴라였다. 5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그 여자를 찾아와서 말하였다. “당신은 그를 꾀어 그의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잡아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시오. 그러면 우리가 각각 당신에게 은 천백 세겔씩 주겠소.” 6 그래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물었다. “당신의 그 엄청난 힘은 어디서 나오지요? 어떻게 하면 당신을 묶어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말해 주세요.” 7 삼손이 그에게 말해 주었다.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로 나를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8 그리하여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를 그 여자에게 가져다 주었고, 그 여자는 그것으로 삼손을 묶었다. 9 미리 옆 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있다가,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삼손은 그 밧줄을 불에 탄 삼 오라기를 끊듯이 끊어 버렸다. 그의 힘의 비밀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자 10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이것 봐요. 당신은 나를 놀렸어요. 거짓말까지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어야 꼼짝 못 하는지 말해 주세요.” 11 삼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밧줄로 나를 꽁꽁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12 들릴라는 새 밧줄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그를 묶었다. 미리 옆 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있다가,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나 삼손은 자기 팔을 묶은 새 밧줄을 실오라기 끊듯이 끊어 버렸다. 13 그러자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여전히 나를 놀리고 있어요. 여태까지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만 했어요! 무엇으로 당신을 묶어야 꼼짝 못 하는지 말해 주세요.” 삼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내 머리칼 일곱 가닥을 베틀 날실에 섞어서 짜면 되지.” 14 그 여자는 그것을 말뚝에 꽉 잡아 매고, 그에게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삼손이 잠에서 깨어나 말뚝과 베틀과 천을 뽑아 올렸다. 15 들릴라가 그에게 또 말하였다. “당신은 마음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세 번씩이나 당신은 나를 놀렸고, 그 엄청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직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어요.” 16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대니까,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서 죽을 지경이 되었다. 17 하는 수 없이 삼손은 그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 놓으면서 말하였다. “나의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내 머리털을 깎으면, 나는 힘을 잃고 약해져서, 여느 사람처럼 될 것이오.” 18 들릴라는 삼손이 자기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에게 전하였다. “한 번만 더 올라오십시오. 삼손이 나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약속한 돈을 가지고 그 여자에게 올라왔다. 19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한 뒤에, 사람을 불러 일곱 가닥으로 땋은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를 괴롭혀 보았으나, 그의 엄청난 힘은 이미 그에게서 사라졌다. 20 그 때에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쳤다. 삼손은 잠에서 깨어나 “내가 이번에도 지난 번처럼 뛰쳐 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하였으나, 주님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잘못된 사랑의 관계
오늘 본문에서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자를 만나 자기의 약점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삼손의 머리카락에 주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정말 힘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삼손은 점점 더 위험한 자극을 향하여 달려갑니다. 처음에는 자기를 묶는 것으로 시작하다가, 머리카락을 묶으라고 하고, 결국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합니다. 점점 더 큰 자극, 사랑의 자극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런데 힘이 떠나는 장면을 살펴보면, 어떤 조건이 삼손의 힘을 잃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유일한 힘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들은 모두 부차적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그 힘은 확정되고, 그 힘의 능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은사로 가득하고, 능력으로 가득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는 삶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쩌면 진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만족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고 온전해졌을 때, 우리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통하여 만족을 누리고, 은혜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참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힘과 조건은 사실 가나안의 방식, 가나안의 해석 방식입니다. 힘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오늘 말씀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사의 창녀에게 간 삼손 (16:1-2)
삼손이 가사에 가서 창녀 하나를 만나 그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삼손이 왔다는 말을 들은 가사 사람들은 그곳을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숨어 기다립니다. 동이 틀 때를 기다렸다가 그를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쾌락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다
삼손이 위기에 빠지는데, 왜 이 위기에 빠지는지가 중요합니다. 삼손은 성적인 쾌락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을 보입니다.
가사는 블레셋 지역의 중심부입니다.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지 생각해 보면, 가사로 여자를 만나러 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모한 일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이 쾌락을 얻어야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성문을 뽑아 메고 간 괴력 (16:3)
그런데 삼손은 밤늦도록 누워 있다가 밤중에 일어나서, 성 문짝을 양쪽 기둥과 빗장째 뽑아 어깨에 메고 헤브론 맞은편 산꼭대기에 올라가 거기에다 버립니다.
작은 태양, 밤의 아들이 되다
'밤늦도록', '밤중에'라는 표현은 삼손의 행동 시각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삼손이라는 이름은 **'작은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빛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그런데 그는 빛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밤의 아들처럼 행동합니다.
그리고 결국 누구를 만납니까? 들릴라를 만납니다. 들릴라는 밤의 여자입니다. 자극을 좇는 삼손의 행동 양식은 밤에 이루어지고, 결국 이 밤의 여인에게 집어삼켜져 빛을 잃게 됩니다.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 (16:4)
그 뒤에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사는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의 이름은 들릴라였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밤의 여자입니다.
협박이 아닌 협상 (16:5)
블레셋 사람의 통치자들이 그 여자를 찾아와 말합니다. "당신은 그를 꾀어 그의 엄청난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를 잡아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알아내시오."
처음 삼손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찾아와 협박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통치자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당신에게 은 천백 세겔씩 주겠소" 하며 협상을 합니다. 성격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삼손이 국가적인 문제로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성문을 뜯어 옮긴 것은 엄청난 괴력입니다. 성벽과 성문은 단순한 문짝이 아니라 방어선입니다. 성문 위에서 수비하고, 문을 통과하는 적을 막아서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이 성벽을 쓸모없게 만드는 삼손이 있으니, 전쟁을 치르면 블레셋은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더 많은 보상을 줄 테니 약점을 찾으라고 들릴라와 협상합니다.
이익으로 움직이는 관계
여기서 들릴라와 삼손의 관계 자체가 이익을 위한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어떤 이익을 원합니까? 쾌락을 원합니다. 성적인 쾌락과 자극을 원합니다. 그렇다면 들릴라는 어떤 이익이 있습니까? 돈과 명예입니다. 나라를 구했다는 명예와 돈을 얻었다는 이익이 돌아옵니다. 이익으로 움직이는 관계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16:6)
들릴라가 삼손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그 엄청난 힘은 어디서 나오지요? 어떻게 하면 당신을 묶어 꼼짝 못 하게 할 수 있는지 말해 주세요."
그 힘은 당연히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들릴라도, 블레셋 방백들도 힘이 '무엇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을 보면 힘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건은 삼손의 부족하고 성숙하지 못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일하셨다는 은혜의 이야기로 읽혀야 합니다.
푸른 칡 일곱 매끼 (16:7)
삼손은 "왜 그런 걸 묻느냐, 그 저의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말해 줍니다.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로 나를 묶으면, 내가 힘이 빠져서 여느 사람처럼 되지."
조건으로 작동하는 힘이라는 착각
당시 사람들은 힘, 또는 마술이 어떤 조건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양쪽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자신이 나실인이기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려 합니다. 들릴라와 블레셋 사람들은 힘이 어떤 물건, 물성을 가진 것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합니다. 둘 다 조건에 의해 힘이 마술화되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조건을 없애면 힘이 빠진다는 이야기가 생깁니다.
힘은 하나님이 주시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진짜는 어떻습니까? 나실인도, 물건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시느냐 주시지 않느냐가 중요합니다.
따지고 보면 삼손이 나실인의 규약을 제대로 지켰습니까? 잔치를 열며 술을 마셨고, 시체를 만졌고, 나귀 턱뼈로 싸웠습니다. 모두 나실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머리카락도 정말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첫 번째 시도 (16:8-9)
블레셋 통치자들이 마르지 않은 푸른 칡 일곱 매끼를 가져다주었고, 그 여자는 그것으로 삼손을 묶습니다. 옆방에 사람들을 숨겨 놓고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에게 들이닥쳤어요!" 하고 외치자, 삼손은 칡을 불에 탄 삼 오라기 끊듯이 끊어 버립니다. 그의 힘의 비밀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빛 가운데 드러난 비밀
마노아와 그 아내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을 때, 천사는 자기 이름을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비밀은 어둠 가운데서 일어나는 비밀이 아니라 빛 가운데 드러난 비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신비입니다.
사람들은 비밀이 어둠 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파헤치려 합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비밀을 찾으려 할수록 끊임없이 실패할 뿐입니다. 빛 가운데 숨겨진 비밀, 그 은혜의 비밀을 아는 사람만이 진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새 밧줄, 두 번째 시도 (16:10-12)
들릴라가 말합니다. "이것 봐요, 당신은 나를 놀렸어요. 거짓말까지 했어요." 삼손은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밧줄로 묶으면 힘이 빠진다고 말하고, 들릴라는 다시 사람들을 숨겨 놓은 채 두 번째 시도를 합니다. 삼손은 팔을 묶은 새 밧줄을 실오라기 끊듯이 끊어 버립니다.
들릴라의 가스라이팅
이런 재시도가 왜 이루어졌을까요? 삼손은 지금 자극에 완전히 집어삼켜져 있습니다.
들릴라가 블레셋 사람들을 불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당신이 블레셋 사람들을 불러서 내가 위험할 뻔하지 않았느냐" 하고 화를 낼 법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들릴라는 지금 지독한 가스라이팅 중입니다. 삼손이 자기를 속였다, 자기를 놀렸다는 말로 몰아세웁니다. 그 뒤에는 삼손이 원하는 자극을 주지 않으려는 배경이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자극에 절여진 삼손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줄도 모르고, 또다시 거짓말을 합니다.
머리카락 일곱 가닥 (16:13-14)
"당신은 여전히 나를 놀리고 있어요. 여태까지 당신은 나에게 거짓말만 했어요." 삼손은 자기 머리카락 일곱 가닥을 베틀 날실에 섞어서 짜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 여자가 그것을 말뚝에 꽉 잡아매고 외치자, 삼손은 잠에서 깨어 말뚝과 베틀과 천을 뽑아 올립니다.
사랑한다면서 (16:15)
"당신은 마음을 내게 털어놓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있어요? 이렇게 세 번씩이나 당신은 나를 놀렸고, 그 엄청난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직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어요." 들릴라는 '사랑'이라는 말로 최후의 가스라이팅을 시도합니다.
들릴라는 정말 사랑을 원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극으로 움직이는 삼손이나,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들릴라나, 모두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기대하며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위한 사랑은 고갈된다
사랑을 내가 받을 이익으로 생각하며 사랑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게 부족한 것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시도합니다. 그런 사랑은 끊임없이 착취당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고갈되고 맙니다. 내 것을 채우기 위한 사랑은 건강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진짜 사랑은 줄 때 생긴다
진짜 사랑은 줄 때 생깁니다. 내가 가진 것이 넘치고 흘러서 저 사람을 만족하게 해 주고 싶을 때 사랑이 완성됩니다. 나의 부족함과 공허함을 채우려고 사랑을 갈구하면, 오히려 자기 자신이 말라 죽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것도 바로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지금 들릴라와 삼손은 자기 이익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도구화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쾌락이든, 자극이든, 만족이든, 삼손은 그것을 원했고 채우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도구화된 사랑에 스스로 빠져 죽음에 이르는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죽을 지경이 된 삼손 (16:16-17)
들릴라가 같은 말로 날마다 끈질기게 졸라 대니, 삼손은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결국 삼손은 속마음을 다 털어놓습니다. "나의 머리는 면도칼을 대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은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 사람이기 때문이오."
마지막 남은 조건 하나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행동을 다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머리카락에 손대지 않은 것 하나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남은 조건이었습니다.
신앙을 조건화할 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고, 우리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신앙에서 다 못 지키는 것들이 있지만, 꼭 하나 지키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 하나는 절대 포기하지 못합니다. 새벽기도를, 어떤 봉사를, 내가 하고 있는 무언가를 멈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사랑을 조건화하면, 그것 하나를 붙들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 조건이 풀리면 하나님이 곧바로 징계를 내리셔서 힘을 사라지게 하신다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 본문을 잘못 읽는 것입니다.
힘이 아니라 관계
진짜는 무엇입니까? 힘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관계가 살아 있었다면 이 모든 조건을 지키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사라지니, 하나님께서 떠나시니, 모든 것이 끝나게 됩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머리카락에 집중하게 만들지만, 머리카락은 하나의 관계를 보여 주는 선일 뿐입니다.
돈을 들고 올라온 통치자들 (16:18)
들릴라는 삼손이 속마음을 다 털어놓은 것을 보고 통치자들에게 전합니다. "한 번만 더 올라오십시오. 삼손이 나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 통치자들이 약속한 돈을 가지고 올라옵니다.
그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돈을 줄 만큼 "완전히 끝났다"고 확신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심리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밤의 여인이 작은 태양을 삼키다 (16:19)
밤의 여인이 작은 태양을 집어삼켰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 무릎에서 잠들게 한 뒤, 사람을 불러 일곱 가닥으로 땋은 그의 머리털을 깎게 합니다. 그를 괴롭혀 보았지만 엄청난 힘은 이미 그에게서 사라졌습니다.
역전된 사랑의 관계
이 관계가 어떻게 역전되었는지 보아야 합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사랑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듣고 들릴라를 더 사랑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 사랑에서 힘이 완전히 떠나 버린 것입니다.
주님이 떠나신 줄 몰랐다 (16:20)
들릴라가 "삼손! 블레셋 사람들이 들이닥쳤어요!" 하고 소리치자, 삼손은 잠에서 깨어 "내가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뛰쳐나가서 힘을 떨쳐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머리카락이 사라진 것을 몰랐을까요? 평생 일곱 가닥으로 길러 온 머리카락이 사라진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난번처럼 힘을 떨치겠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삼손조차 머리카락 때문에 힘이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실인으로 사는 동안 수많은 규약을 어겼지만 힘은 그대로 있었으니까요. "나는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니 조금 어겨도 돼"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자기를 떠나신 것은 깨닫지 못합니다. 관계 자체가 완전히 떠나 버렸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밤에 집어삼켜진 것입니다.
힘의 근원을 알던 삼손
지난 본문에서 삼손은 엔학고레에서 목말라 죽을 뻔했을 때 "주님께서 친히 이 크나큰 승리를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힘의 정체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관계가 완전히 틀어져서 하나님이 아니라 들릴라를 사랑하게 되자, 능력은 사라졌습니다.
표면보다 성숙, 성숙보다 관계
이 말씀은 우리가 기적과 힘, 능력과 은사를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돌아보게 합니다.
결국 드러난 표면적인 것보다 우리의 성숙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모든 기적은 아무것도 아닌 쓸모없는 것이 되고,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실 때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말씀을 정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고, 그 관계가 부드럽고, 그 안에서 충만한 만족을 얻는다면, 기적과 은사가 드러나지 않아도 그 관계 안에서 만족하게 됩니다. 자극과 이익으로 움직이는 사랑이 아니라, 관계 자체에서 오는 풍족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사랑,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그 사랑은 어떻습니까? 본문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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