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아도
사사기 9:22-45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세 해 동안 다스렸다. 23 그 때에 하나님이 악령을 보내셔서, 아비멜렉과 세겜 성읍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생기게 하시니, 세겜 성읍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다. 24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에게 저지른 포악한 죄과를 이렇게 갚으셨는데, 자기의 형제들을 죽인 피값을, 아비멜렉에게, 그리고 형제들을죽이도록 아비멜렉을 도운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갚으신 것이다. 25 세겜 성읍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괴롭히려고 산꼭대기마다 사람을 매복시키고, 그 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강탈하게 하자, 이 소식이 아비멜렉에게 들렸다. 26 에벳의 아들 가알이 자기 친족과 더불어 세겜으로 이사왔는데,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27 마침 추수 때가 되어, 세겜 성읍 사람들은 들로 나가 그들의 포도원에서 포도를 따다가, 포도주를 만들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들은 신전에 들어가 먹고 마시면서, 아비멜렉을 저주하였다.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말하였다. "우리 세겜 성읍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도대체 아비멜렉이 누굽니까? 여룹바알의 아들입니다! 스불은 그가 임명한 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를 섬겨야 합니까? 여룹바알과 그의 심복 스불은 세겜의 아버지 하몰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29 나에게 이 백성을 통솔할 권한을 준다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습니다. 그리고 아비멜렉에게 군대를 동원하여 나오라고 해서 싸움을 걸겠습니다." 30 그 때에 그 성읍의 통치자인 스불이 에벳의 아들 가알의 말을 전하여 듣고, 화가 치밀어, 31 몰래 전령을 시켜, 아루마에 있는 아비멜렉에게 알렸다. "보십시오, 에벳의 아들 가알과 그의 친족이 세겜으로 이사오더니, 임금님을 대적하려고 온 성읍 사람들을 충동질하고 있습니다. 32 그러니 이제 임금님께서는 밤중에 부하들과 함께 들에 매복하셨다가, 33 아침 일찍 동틀녘에 일어나서 성읍을 기습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가알이 그의 무리를 이끌고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그들을 습격하십시오." 34 아비멜렉과 그와 함께 한 모든 군대가 밤에 일어나, 세겜 옆에 네 무리로 나누어 매복하였다. 35 에벳의 아들 가알이 나와서 성문 어귀에 서니, 아비멜렉과 그의 군대가 매복한 곳에서 나왔다. 36 가알이 그 군대를 보고 스불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사람들이 산꼭대기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소!" 그러자 스불이 그에게 대꾸하였다. "산 그림자가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겠지요." 37 다시 가알이 말하였다. "보시오! 사람들이 높은 지대에서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쪽에서 내려오고 있소!" 38 그제야 스불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겠는가?' 하고 큰소리치던 그 용기는 지금 어디로 갔소? 저들이 바로 당신이 업신여기던 사람들 아니오? 어서 나가서 싸워 보시오!" 39 가알은 세겜 성읍 사람들을 거느리고 앞장서 나가 아비멜렉과 싸웠다. 40 그러나 그는 아비멜렉에게 쫓기어 그 앞에서 도망하였고, 많은 사상자가 성문 앞까지 널렸다. 41 아비멜렉은 아루마로 돌아가고, 스불은 가알과 그의 친족을 쫓아내어 세겜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다. 42 그 다음날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이 들로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43 그는 자기 군대를 이끌고 나가서, 세 떼로 나누어 들에 매복하고 있다가, 그들이 성읍을 나서는 것을 보고 일제히 일어나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쳐죽였다. 44 아비멜렉과 그가 이끄는 한 떼는 앞으로 쳐들어가 성문 어귀를 지키고, 다른 두 떼는 들에 있는 모든 사람을 공격하여 그들을 쳐죽였다. 45 아비멜렉은 그 날 종일 그 성읍 사람들과 싸워서 그 성읍을 점령하였다. 그는 그 성읍 안에 있는 백성을 죽이고 나서, 성읍을 헐고, 거기에 소금을 뿌렸다.
삼 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앞 본문에서 요담이 예언했습니다. 아비멜렉과 세겜 성읍 사람들 사이에 불이 나서 서로를 태워 버릴 것이라고요. 그리고 22절은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세 해 동안 다스렸다."
삼 년입니다. 그 삼 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대로 끝났다면 사람들은 요담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 말이 틀렸다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그렇게 삽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것, 그것이 신앙의 가장 어려운 대목입니다.
그런데 삼 년이 지나자 그 예언대로 두 세력 사이에 완전히 불이 붙습니다.
하나님이 악령을 보내셨습니다
23절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악령을 보내셔서, 아비멜렉과 세겜 성읍 사람들 사이에 미움이 생기게 하시니."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은 왕권을 차지하는 일에서 동맹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생긴 미움과 불화가, 공고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세력을 완전히 와해시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다고 말합니다.
겉으로 보면 사람들끼리 싸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싸움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었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 일흔 명의 피값
24절이 이유를 밝힙니다. 아비멜렉이 여룹바알의 아들 일흔 명에게 저지른 포악한 죄과를 이렇게 갚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들을 죽인 피값을 아비멜렉에게, 그리고 그 일을 도운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갚으셨습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힘으로 권력을 차지했고, 결국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힘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 힘센 자에게 권력이 돌아가는 구조, 그것이 가나안의 작동 방식이었습니다.
지금 아비멜렉과 세겜은 가나안의 방식으로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방식의 통치를 원하지도 않으셨고, 유지하실 생각도 없으셨습니다.
산꼭대기의 매복, 그리고 통행세
25절에서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괴롭히려고 산꼭대기마다 사람을 매복시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강탈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비멜렉을 괴롭히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이 원한 것은 통행세였습니다. 통행세를 자신들이 걷겠다는 것은, 이 지역의 패권을 자신들이 쥐겠다는 뜻입니다.
아비멜렉이 더 강하면 숙일 것이고, 자신들이 더 강하다고 판단되면 챙기겠다는 것. 둘 사이에 철저하게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가알이라는 사람이 들어옵니다
26절, 에벳의 아들 가알이 친족과 함께 세겜으로 이사 옵니다. 그리고 세겜 성읍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습니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외부인입니다. 갈등의 배경이 이미 깔려 있는 자리에, 외부인이 들어와 힘의 논리를 하나 더 얹습니다.
포도원 잔치 — 하필 그 자리에서
27절의 장면을 그냥 넘기면 안 됩니다. 추수 때가 되어 세겜 사람들이 들로 나가 포도를 따고, 포도주를 만들고, 잔치를 베풉니다. 그리고 신전에 들어가 먹고 마시면서 아비멜렉을 저주합니다.
포도원, 포도주 틀, 잔치. 이 이미지가 누구에게 연결됩니까.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렙과 스엡을 포도주 틀과 바위 위에서 죽임으로써 그 부르심을 완성했습니다. 물론 그 안에 기드온의 실수와 개인적 복수심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포도주 틀에서 나오는 풍성함이 어디서 오는지를, 하나님께서 이 땅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를 보여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서, 그의 아들이 저주받고 있습니다. 이전 이야기가 얼마나 까맣게 잊혔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사사기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잊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 합니까"
28절과 29절에서 가알이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아비멜렉이 누구냐, 여룹바알의 아들 아니냐, 스불은 그가 임명한 자 아니냐, 왜 우리가 그를 섬기느냐.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나에게 이 백성을 통솔할 권한을 준다면, 아비멜렉을 몰아내겠습니다."
또 힘의 논리입니다. 내가 힘을 가지면 저 사람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 통행세를 걷기 시작하면서 자신감이 붙어 있던 사람들에게, 이 말은 아주 잘 먹혔을 것입니다.
스불의 밀고
30절부터 33절. 성읍의 통치자 스불이 이 말을 전해 듣고 화가 치밀어, 몰래 전령을 보내 아루마에 있는 아비멜렉에게 알립니다. 밤중에 매복했다가 아침 일찍 성읍을 기습하시라고요.
여기서 두 가지가 드러납니다. 하나는 스불이 전략가라는 것입니다. 내부 사정과 성의 구조를 아는 사람이 이렇게 진언하면 전쟁은 사실상 끝난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가알이 그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성 안에 이미 아비멜렉의 심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말이 스불에게 흘러가게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알은 지금 통치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릅니다.
그림자인가 사람인가
34절, 아비멜렉은 네 무리로 나누어 매복합니다. 기드온은 세 무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매복은 대단히 성공적이었습니다. 아비멜렉은 네 무리입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 만큼 전략적인 인물입니다.
35절 이후의 대화가 이 본문에서 가장 씁쓸한 대목입니다. 가알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스불에게 말합니다. 스불은 대답합니다. "산 그림자가 사람들처럼 보이는 것이겠지요."
가알은 부대가 나뉘어 내려오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런데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는 지금 스불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스불이 아비멜렉 편이라는 것을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38절에서 스불이 마침내 정체를 드러냅니다. "'아비멜렉이 누구이기에 우리가 그를 섬기겠는가' 하고 큰소리치던 그 용기는 지금 어디로 갔소?"
미련함과 교만이 만날 때
성경은 미련함과 교만이 결합했을 때 어떤 파괴적 결과가 나오는지를 여러 번 말합니다. 가알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능력도 없으면서 자기를 과대평가한 교만. 그 둘이 만나니 그는 아무것도 아닌 인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적인 면만 보면 안 됩니다. 가알은 왜 저렇게 미련한가, 왜 저렇게 바보 같은가 — 하나님을 빼놓고 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알을 미련하게 하시고, 교만하게 하시고, 그 마음을 딱딱하게 하셔서 심판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은 출애굽기의 바로와 같은 자리입니다. 바로에 대해 하나님이 그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그 말을 조금 바꾸면, 바로 스스로가 계속해서 하나님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악해지는 결과입니다.
완전하지 못한 승리
39절부터 41절. 가알은 세겜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가 아비멜렉과 싸우지만 쫓겨 도망하고, 많은 사상자가 성문 앞까지 널립니다. 아비멜렉은 아루마로 돌아가고, 스불은 가알과 그 친족을 세겜에서 쫓아냅니다.
여기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완전하지 못한 승리였습니다.
이튿날, 세 떼로 나누어
42절과 43절. 이튿날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이 들로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군대를 세 떼로 나누어 들에 매복합니다.
세 떼. 매복. 정복. 기드온의 작전을 그대로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계속 나옵니다.
그래서 이 장면에서 누가 악인이고 누가 정복자인지가 굉장히 모호해집니다. 아비멜렉도 악인이고 세겜 사람들도 악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을 쫓아내신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전쟁이 치러지고 있으니, 선악의 구별이 뭉개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 이 일을 누가 하고 계신가
기드온의 이야기에서는 세 떼로 나누어 매복하고 정복한 그 일을 승리로 이끄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악인들이 그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속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질문이 남습니다. 이 일의 최종적인 승인, 최종적인 행위자는 누구신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이야기 속에서 숨어 아무것도 안 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인을 들어 악인을 처벌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악을 방조하신다고, 적극적으로 내버려 두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가운데서 적극적으로 악을 제거하려 하셨다면, 아마 이스라엘 전체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이들을 다스리시고 징계하시는 중입니다.
성읍을 헐고, 소금을 뿌리다
44절과 45절. 아비멜렉과 한 떼는 성문 어귀를 지키고, 다른 두 떼는 들에 있는 모든 사람을 쳐죽입니다. 그리고 그날 종일 싸워 성읍을 점령하고, 백성을 죽이고, 성읍을 헐고, 거기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소금을 뿌렸다는 것은 이제 이곳을 밟는 사람은 어떤 소출도, 어떤 공급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의 의미입니다. 완전한 멸망입니다.
그리고 아비멜렉도 결국 하나님의 손에 죽습니다. 그것은 내일 본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적용 —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 같아도
이야기를 조금만 바꾸어 보면 이렇습니다. 이것은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의 전쟁이고,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낸 힘의 논리에 따른 끔찍한 내전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악이 처벌당하고, 마침내 그 결과가 힘의 논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집니다.
우리가 우리 뜻대로, 우리 생각대로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안전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온전한 평화와 안식과 풍성함을 누립니다.
이 세상의 논리로, 힘의 논리로, 돈의 논리로 제아무리 살아 보려고 발버둥 쳐도, 하나님께서 누르시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그 이야기를 오늘은 가알이 보여 주고, 내일은 아비멜렉이 보여 줄 것입니다.
최고의 성공도 하나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인생에 있는 유일한 위로와 소망을 발견하시고, 그 안에 살기를 다시 한번 다짐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질문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삼 년을, 나는 어떻게 견디고 있습니까
내 삶의 갈등을 사람의 문제로만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힘의 논리, 돈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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