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하나님께서 악을 다루시는 법

작성자 사진: 정환 조
정환 조
9월 21일
6분 분량

사사기 9:46-57

46 세겜 망대에 있던 성읍 지도자들이 모두 이 소식을 듣고, 엘브릿 신전에 있는 지하 동굴로 피하였다. 47 아비멜렉은, 세겜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지하 동굴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8 아비멜렉은 군대를 모두 이끌고 살몬 산으로 올라갔다. 아비멜렉은 손에 도끼를 들고서, 나뭇가지들을 찍어 어깨에 메고, 그와 함께 있는 백성에게 지시하였다. "내가 하는 것을 보았으니, 너희도 빨리 그대로 하여라." 49 그래서 저마다 나뭇가지들을 찍어가지고 아비멜렉을 따라가서, 지하 동굴 앞에 나무를 쌓아 놓고, 그 지하 동굴에 있는 사람들 쪽으로 불을 질렀다. 이렇게해서 세겜 망대에 있던 성읍 사람들도 모두 죽었는데, 죽은 남녀가 천 명쯤 되었다. 50 그 뒤에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갔다. 그는 데베스에 진을 치고, 그 곳을 점령하였다. 51 그러나 그 성읍 안에는 견고한 망대가 하나 있어서, 남녀 할 것 없이 온 성읍 사람들이 그 곳으로 도망하여, 성문을 걸어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갔다. 52 아비멜렉은 그 망대에 이르러 공격에 나섰고, 망대 문에 바짝 다가가서 불을 지르려고 하였다. 53 그러나 그 때에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숴 버렸다. 54 아비멜렉은 자기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병사를 급히 불러, 그에게 지시하였다. "네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인이 그를 죽였다는말을 할까 두렵다." 그 젊은 병사가 아비멜렉을 찌르니, 그가 죽었다. 55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저마다 자기가 사는 곳으로 떠나갔다. 56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의 값을 이렇게 갚으셨고, 57 또 세겜 사람들의 죄악도 그들에게 모두 갚으셨다.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이렇게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악을 저지르고도 평안할 수 있는가

세겜 사람들은 반역을 저질렀습니다. 아비멜렉과 손잡고 기드온의 아들 일흔 명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습니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품게 됩니다. 이런 악을 저지른 사람들이 과연 평안하게 살 수 있는가.

오늘 본문이 그 질문에 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책임을 물으시고, 그 악을 징벌하십니다.

46절에서 세겜 망대에 있던 성읍 지도자들은 소식을 듣고 엘브릿 신전의 지하 동굴로 피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어떻게 더욱 끔찍하게 죽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것은 이전에 요담이 예언했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제거하시고, 악을 관리하시고, 때로는 더 큰 악으로 악을 징벌하십니다.

살몬 산의 나뭇가지

47절부터 49절. 세겜 망대의 사람들이 모두 지하 동굴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은 아비멜렉은 군대를 이끌고 살몬 산으로 올라갑니다. 손에 도끼를 들고 나뭇가지를 찍어 어깨에 메고, 함께 있는 백성에게 지시합니다. "내가 하는 것을 보았으니, 너희도 빨리 그대로 하여라."

사람들은 저마다 나뭇가지를 찍어 아비멜렉을 따라가, 지하 동굴 앞에 쌓아 놓고 불을 지릅니다. 세겜 망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고, 죽은 남녀가 천 명쯤 되었습니다.

권선징악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권선징악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면 이 본문은 모두가 기대하고 바라는 도덕적인 설명으로 끝나고 맙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그보다 깊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권선징악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그 악을 징벌하실 날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것은 도덕으로 설명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심판으로 악이 정복된다는 약속입니다.

오래 걸려도, 반드시

세겜 사람들과 아비멜렉이 왕권을 잡은 뒤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요담의 예언은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믿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꽤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좌절되거나, 사라지거나, 취소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이 방식을 생각하면서, 오래 걸리더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고야 마신다는 확신을 다시 한번 붙들면 좋겠습니다.

데베스의 견고한 망대

50절과 51절.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가서 진을 치고 그곳을 점령합니다. 그런데 그 성읍 안에 견고한 망대가 하나 있었고, 남녀 할 것 없이 온 성읍 사람들이 그리로 도망하여 성문을 걸어 잠그고 망대 꼭대기로 올라갑니다.

아비멜렉은 세겜에 대한 심판을 멈출 생각이 없습니다. 더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해 데베스에 있는 사람들까지 정복하려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요. 당시의 왕들에게 반역자를 그대로 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반역을 내버려 두는 순간 왕의 권위와 힘이 떨어지고, 곧바로 다른 곳에서 반역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왕은 강력한 처벌을 해야 했습니다.

누가 진짜 왕인가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과연 아비멜렉이 진정한 왕이었는가.

아비멜렉은 스스로를 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왕이신 이스라엘 가운데서 아비멜렉이 벌이고 있는 이 심판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반역자들을 처벌하시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가 심판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심판이 그를 통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망대 문에 바짝 다가가서

52절. 아비멜렉은 망대에 이르러 공격에 나섰고, 망대 문에 바짝 다가가 불을 지르려 합니다.

전략적으로 보면 이상한 장면입니다. 성을 공격할 때는 높은 곳에서 방어하는 쪽이 훨씬 유리합니다. 위에서 돌이든 집기든 무엇이든 떨어뜨리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려는 사람들은 쉽게 공격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은 그 망대 문 앞까지 바짝 다가갑니다.

아마 바로 직전, 동굴에 숨은 사람들에게 불을 질러 성공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방법이 먹혔으니 또다시 불을 지르려 한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그만큼 미련했거나, 반대로 어마어마한 자신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 공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희도 불에 타 죽어 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불이 뿜어져 나와

그런데 이 장면은 이미 예언 가운데 있었습니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에서 외쳤던 말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뿜어 나와서 세겜 성읍 사람들과 밀로의 집안을 살라 버릴 것이며, 세겜 성읍 사람들과 밀로의 집안에서도 불이 뿜어 나와서 아비멜렉을 살라 버릴 것입니다." (삿 9:20)

하나님께서 어떻게 심판하시겠다고 예고하셨고, 그 심판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한 여인이 던진 맷돌 위짝

53절과 54절. 그때 한 여인이 맷돌 위짝을 아비멜렉의 머리에 내리던져 그의 두개골을 부숴 버립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무기를 들고 다니는 젊은 병사를 급히 불러 지시합니다. "네 칼을 뽑아 나를 죽여라! 사람들이 나를 두고, 여인이 그를 죽였다는 말을 할까 두렵다." 그 젊은 병사가 아비멜렉을 찌르니, 그가 죽습니다.

형제 일흔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왕이 된 사람이, 이름도 남지 않은 한 여인의 손에 쓰러집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신경 쓴 것은 자기 체면이었습니다.

사울의 죽음, 그리고 다윗의 편지

이 이야기는 성경의 다른 두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는 사울입니다. 사울은 이방인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아서 자기 무기를 든 병사에게 자기를 찔러 달라고 했습니다. 아비멜렉의 마지막과 겹쳐 보이는 장면입니다.

또 하나는 다윗입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요압은 전황을 보고하는 전령에게 이렇게 일러둡니다. 다윗 왕이 왜 그렇게 성벽 가까이 갔느냐고,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이 데베스에서 한 여자가 성벽 위에서 던진 맷돌 위짝에 맞아 죽은 것을 모르느냐고 화를 내면, 그때 "임금님의 부하 헷 사람 우리야도 죽었습니다" 하고 대답하라고요.

성벽 가까이 가면 공격자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교훈으로 아비멜렉의 이야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다윗의 죄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요담의 저주가 그대로

55절부터 57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비멜렉이 죽은 것을 보고 저마다 자기가 사는 곳으로 떠나갑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일흔 명을 죽여 자기 아버지에게 저지른 죄의 값을 이렇게 갚으셨고, 세겜 사람들의 죄악도 그들에게 모두 갚으셨으며, 여룹바알의 아들 요담의 저주가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들 사이에서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살라 버리는 장면을, 우리는 지금 읽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세 가지 — 팀 켈러

팀 켈러 목사님은 이 본문에서 심판에 대해 몇 가지를 정리합니다.

첫째, 심판은 보이지 않게 다가옵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사람들을 심판하고 계신지 커튼을 젖히고 알려 줄 영감받은 저자는 없습니다. 세겜 사람들도 동맹을 맺었던 두 세력이 어떻게 그렇게 반목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사건의 결과만 가지고 "저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이 당신을 심판하고 계신다" 하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심판은 기다림 후에 일어납니다. 요담이 경고한 지 3년이 지나서야 이 일이 벌어졌습니다. 곧바로 일어날지, 몇 년 뒤에 일어날지 예고되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 일이 일어날지조차 확신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담에게 3년은 길게 느껴졌겠지만, 그 기간 동안 그는 인내와 신뢰를 배워야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언제 성취될지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신약은 계속해서 가르칩니다.

셋째, 심판은 인간의 죄의 결과를 통해 임합니다. 세겜은 불충성 때문에 파괴되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죄가 결국 몰락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기 지위를 지키려는 욕망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죄가 곧 그의 몰락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반역자를 심판하실 때, 다른 인간 반역자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왕이신 나의 아버지 — 다니엘 블록

구약학자 다니엘 블록도 이 본문에 대해 주석을 남겼습니다.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 또는 '왕이 나의 아버지다'로 풀이됩니다. 아비멜렉은 그 이름에 걸맞게 자신이 아버지의 적합한 후계자임을 절실히 증명하려 했습니다. 왕이기에 반역을 그냥 두지 않았고, 강력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처음 아비멜렉을 만났을 때 우리는 의심했습니다. 기드온이 왜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자기가 왕이라는 속내를 담은 것은 아닐까.

그런데 다윗 시대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 바로 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입양의 언약입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왕이신 나의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참된 왕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담기게 됩니다.

블록이 지적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아비멜렉은 결국 왕이신 아버지,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 자신이 어떤 결과를 맞게 되는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이름의 뜻을 문자 그대로 경험한 것입니다.

인간의 허영도, 인간의 잔혹함도 하나님을 그 왕좌에서 끌어내릴 수 없었습니다. 아비멜렉의 자기중심적인 야망은 결국 하나님의 왕권 앞에 굴복해야만 했습니다.

적용 — 내가 왕이 되려는 순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왕권 아래 굴복시키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인생을 사는 순간부터, 우리는 끔찍한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마침내 그 일들을 이루고야 마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며 하나님이 왕 되신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반드시 보여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왕이심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하고 내가 왕으로 사는 순간부터는, 또 다른 끔찍함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더라도, 아무리 괴로운 일을 당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시고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심판과 자비와 일하심을 끝까지 신실하게 보여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삶, 하나님께서 왕이신 삶을 온전히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의 질문

  • 하나님께서 악을 내버려 두신다고 느꼈던 때가 있습니까.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고 있습니까

  • 어떤 일의 결과만 보고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함부로 판단한 적은 없습니까

  •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왕으로 앉아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댓글


bottom of page